🧶 새틴 메리노 울 메리야스 목도리 @banul.official
🧵 Satin Merino Wool(402 오트밀) 5볼(250g)
🪡니트프로 진저 3mm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차가운 공기가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따뜻한 목도리를 하나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라면 완제품을 구매했겠지만, 그해에는 이상하게도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이 목도리였다.
뜨개 입문의 시작이 된 목도리
처음에는 뜨개를 꽤 가볍게 생각했다. 단순히 실과 바늘만 있으면 금방 완성할 수 있는 취미 정도로 여겼다. 일주일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목도리는 무려 4개월 동안 함께하게 된 긴 프로젝트가 되었다.
어느 날 인스타그램을 보다 우연히 바늘이야기 광고를 접하게 됐다. 평소에도 광고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편이라 자연스럽게 사이트를 둘러보게 되었고, 그 안에서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이 DIY 키트였다. 완성품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야 하는 구성이라는 점이 오히려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직접 만든 목도리를 직접 착용할 수 있다는 점은 생각보다 큰 매력이었다. 미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손재주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결국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고 바로 주문을 진행했다. 지금 돌아보면 꽤나 무모한 자신감이었다.
Co: 2025.11.12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첫 뜨개 프로젝트
택배를 받은 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예상보다 훨씬 어렵겠다는 것이었다. 실은 생각보다 얇았고, 바늘 역시 매우 가는 편이었다. 화면으로 볼 때와 실제 난이도는 완전히 달랐다.
도안을 펼쳐놓고 처음으로 뜨개 도안을 제대로 읽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마주한 과정은 90코 잡기였다.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코를 일정하게 잡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영상을 반복해서 보며 겨우 시작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메리야스 뜨기를 반복했다. 겉뜨기와 안뜨기를 이어가는 단순한 구조였지만, 처음에는 손에 익지 않아 속도가 매우 느렸다. 한 단을 완성하는 데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재미있었다. 단순한 반복인데도 조금씩 길어지는 목도리를 바라보는 과정 자체가 꽤 만족스러웠다.

20년 만에 다시 시작한 뜨개
생각해보면 뜨개를 마지막으로 했던 건 중학교 수행평가 때였다. 거의 20년 만에 다시 바늘을 잡은 셈이었다.
육아와 집안일 위주의 일상 속에서 새로운 집중의 대상이 생겼다는 점도 컸다. 어느 순간부터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자연스럽게 뜨개 바늘을 찾고 있었다. 손을 움직이며 조용히 반복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큰 안정감을 주었다.
특히 뜨개는 결과보다 과정의 비중이 큰 취미라는 걸 이때 처음 느꼈다. 빠르게 완성하는 것보다 매일 조금씩 이어가는 시간이 더 중요했다.

무한 메리야스의 지루함과 슬럼프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문제도 생기기 시작했다. SNS 알고리즘이 점점 뜨개 중심으로 바뀌면서 다양한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케이블 무늬, 배색 니트, 입체적인 패턴처럼 훨씬 화려한 프로젝트들이 계속 보였다.
반면 Satin Merino Scarf는 끝없는 메리야스 반복이었다. 이른바 무한 메리야스 패턴은 생각보다 쉽게 지루함을 만들었다. 게다가 얇은 실과 작은 바늘 덕분에 작업 속도까지 느렸다.
하루 종일 떠도 길이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날도 많았다. 처음의 설렘은 점점 사라지고 잠시 손을 놓게 되는 시기도 있었다.

꾸준히 완성하기 위해 바꾼 방식
결국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집에서는 무늬나 배색이 들어간 다른 뜨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목도리는 외출용 뜨개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친구를 만날 때나 카페에 갈 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항상 가방에 넣어 다녔다.
특히 이동 시간에 하기 좋은 프로젝트였다. 복잡한 무늬가 없어서 도안을 계속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고, 메리야스 뜨기만 반복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렇게 부담을 나누고 나니 더 꾸준하게 이어갈 수 있었다. 완성을 목표로 하기보다 생활 속에서 천천히 이어가는 방식이 훨씬 잘 맞았다.

겨울 끝자락에서 완성한 목도리
시간이 흐르면서 계절도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괜히 조급해졌다. 2월이 거의 끝나가던 시점부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여전히 작업 속도는 느렸고 메리야스 반복은 쉽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꼭 완성하고 싶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이어간 끝에 결국 3월 초 완성할 수 있었다.
Fo: 2026.3.3

완성된 목도리를 펼쳐보았을 때의 감정은 꽤 묘했다. 계절은 이미 따뜻해지고 있었고 바로 착용하기엔 애매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아쉽지는 않았다.
이 목도리는 단순히 겨울용 아이템 하나를 만든 경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가 남긴 의미
이 목도리는 화려한 기술이 들어간 작품은 아니다. 특별한 패턴이나 복잡한 기법 없이 메리야스 뜨기만으로 완성된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뜨개의 기본적인 즐거움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메리노 울 특유의 부드러운 촉감과 뛰어난 보온성, 그리고 차분하게 이어지는 메리야스 조직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무엇보다 뜨개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프로젝트라고 느꼈다. 빠르게 완성하는 것보다 천천히 손에 익히고, 반복 속에서 시간을 쌓아가는 경험 자체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목도리는 단순한 뜨개 결과물이 아니다. 처음으로 손으로 시간을 엮어냈던 기록이자, 새로운 취미의 시작을 남겨준 첫 프로젝트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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